최근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는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연방정부 행정중단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그 여파는 미국 사회와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2014회계연도 예산안을 기한 내 통과시키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이번 조치에 대해 여론 재판이 시작됐다. 조기 진화를 서두르지 않았던 정치인,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 의원들에 대한 집중포화가 가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태 직후 사라진 일자리가 10만개를 넘었고, 미국 경기가 장기적 관점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 논쟁의 중심에 있는 `오바마 케어`는 건강보험 개혁을 통해 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고자 하는 법 개정 의지를 담고 있다. 현재 미국 정치의 대립은 오바마 대통령이 공약 이행을 위해 정치적 승부수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 17년 전 클린턴 행정부의 예산안 거부로 시행된 셧다운 조치 때와 극명하게 닮아 있다. 상ㆍ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에 비난 여론이 집중된 것을 고려하면 퇴로를 차단당한 공화당이 어떤 중재안을 내밀지 지켜볼 일이다.
유럽 각국도 2010년 재정위기 발발 이후 보수, 진보 진영의 구분 없이 의료ㆍ교육 등 무상복지 부문의 예산을 축소해 왔다. 재정위기의 진앙지였던 그리스, 스페인 등은 물론이고 비유로존 국가로 재정위기를 다소 비켜간 영국, 스웨덴 등도 복지예산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도 산업발전 시기를 지나며 사민주의 이념 아래 조합주의식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해 온 유럽 각국은 장기 경기침체와 재정위기를 계기로 사회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21세기형 복지예산의 역습`이다.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해온 미국은 경쟁체제에 의존한 의료복지를 전 국민 대상 보편적 복지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다. 반대로 재정적자에 의존해 사회복지 시스템을 유지해 온 유럽형 복지국가들은 복지예산을 축소하고, 세금ㆍ연금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현 런던정경대학(LSE) 교수 앤서니 기든스가 출간한 `제3의 길`로 다수의 국가들이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제3의 길`과 사회주의 실패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넘어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이념의 재정립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의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포용과 통합을 통해 실용적 정책을 선택한 정책 전략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이념노선을 흔들어 좌우의 간격을 좁혀 왔다. 즉 보수와 진보를 떠나 리더가 좀 더 수용적 자세로 정책 전반을 이끌어 가는가, 집권당이 유연한 자세로 실용적 통합을 진행해 가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산적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 국민의 신뢰를 얻어 차기 집권에 성공케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21세기형 복지예산의 역습 한 중간에 처해 있다.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의 수정 문제로 논란이 제기됐고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증세와 기초연금에 이어 무상보육 문제,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등 복지 이슈가 거듭될 때마다 우리에게 아쉬운 부분은 사회적 신뢰이다. 선거용 공약과 현실정치가 뒤엉켜 반복되는 상황은 작은 변화에도 국민을 지치게 한다.
오바마 케어로 인한 셧다운 상황에서 미국 국민은 좌우를 떠나 신뢰를 지킨 측을 지지하며 지켜보고 있다. 신뢰 그리고 실용적 목표를 위한 수용과 타협의 길. 현재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신작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