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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발명·기술'이 복지국가를 이끈다
✍️ 선진사회복지연구회 📅 2012.06.08 00:00 👁 138

과거 성장기 한국 과학기술은 수익성에 몰두해 혜택 양극화
도우미 로봇과 원격 경보처럼 약자 우선하고 삶의 질 높이는 인간 지향 발명으로 전환 필요
가치 있는 활용에 초점 맞춰야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국가의 확대가 정치적 화두로 자리 잡은 지금, 성장 중심 전략을 넘어선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고용복지'를 통해서 성장친화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복지'의 이름으로 전시와 공연예술의 보편적 향유를 제안한다. 사병 월급을 올려서 '군대복지'를 혁신하자고도 하고, '국제복지'가 외교의 새로운 영역이라는 각성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이처럼 수많은 정책분야에서 복지와의 조우(遭遇)가 뜨거운 지금, 국가 주도형 성장전략의 총아였던 과학기술 분야가 복지논쟁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기억되는 성장의 시기, 한국 과학기술은 주로 금전적인 수익성 창출에 몰두했었다. 과학기술 투자의 채산성만 강조한 결과,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혜택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던 경험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황금만능주의의 범람 속에서 우수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를 외면하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데, 맹목적인 재정지원만으로 추세 전환을 기대하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근원치료의 첫 단추는 과학기술의 목표를 재설정하는 것에서 꿰어져야 하며, 약자를 우선하는 '착한 발명'의 이름으로 인재를 끌어모을 비전의 제시가 시급하다. 복지국가 덴마크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사회기술 디자인 경연' 같은 것에 대한 정책당국의 관심도 요청된다.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경연에 젊은 발명가들이 몰려들고, 수상작이 실용화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면 새로운 의미의 과학기술 진흥이 시작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류(類)의 '스마트 인문학'이 새로운 대세라면, 과학기술이 인간을 향하도록 물꼬를 트는 것은 신성장의 열쇠이기도 할 것이다.

과학기술에 부여되어 온 본원적인 존재의의는 인류복지에 기여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복지국가의 시대에 인간을 지향하는 '착한 발명'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 복지에 투입될 만만치 않은 재정의 일부라도 '착한 발명'과 연동시켜 투자된다면, 약자를 위한 과학기술의 틈새시장 만들기가 불가능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은 인본적(人本的) 가치는 있으되 시장에서 자생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기술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좋은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복지를 돈으로 주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복지투자를 통해 창출될 '착한 기술 시장'에도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상 속의 '착한 시장'이 사회적 기업 같은 기존의 정책과 맞물려 현실화된다면, 복지가 고용과 성장으로 선순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의 발명으로 여성해방이 촉진되었고, 엘리베이터와 자동변속기의 발명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허물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진보에는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인간의 행복을 진심으로 고민하였던 '착한 발명가'의 열정이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편적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만 복지가 아니다. 인간의 보편적 행복을 지향하는 과학기술에 관한 기억의 재구성이 그래서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모두가 편해지는 지름길이며,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보편적 디자인'의 기본적 원리이다.

사회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과정에서도 과학기술은 큰 몫을 해낼 수 있다. 예컨대 노인, 영·유아, 장애인에 대한 돌봄서비스는 서비스 종사자의 사랑과 관심이 품질을 결정한다. 이 분야에서 요구되는 노동 강도는 일반적인 인내심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병수발 3년에 효자가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봄 종사자의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동이나 장애인을 위한 도우미로봇, 독거노인을 위한 원격 경보시스템 등을 복지투자의 일환으로 개발하면 돌봄노동의 근무환경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다. 로봇과 컴퓨터가 돌봄노동의 강도를 낮추게 되면 서비스 종사자의 행복감이 대상자에게 전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과학기술 수혜의 불평등 개선에만 신경 쓰다가 대상자의 복지를 망치는 경우도 경계해야 한다. 정보격차를 없애겠다고 저소득층 아동에게 인터넷을 공짜로 주다가 게임중독에 빠지게 만든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술소비의 격차해소에 무작정 돈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가치 있게 활용하도록 돕는 데에도 게을러서는 안 된다. 사회서비스 중심의 맞춤형 복지를 향해서 다양한 정책들이 세심하게 융합될 때 비로소 '착한 기술'이 완성된다.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분야들을 엮어내는 통섭적 역발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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