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안정선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장은 2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올려 보며 서러움에 몸서리쳤다. ‘나는 왜 여기에 왔고, 언제 떠나게 될까.’
청사 근처 천막 농성장에는 ‘아동이 나라의 미래인가요?’ ‘평등도 공정도 정의도 없는 나라’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에 띈다. 그는 강원도 영월의 아동청소년그룹홈(공동생활가정) ‘요셉의 집’을 떠나 3주째 농성 중이다. 그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왔는데,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아동청소년그룹홈(이하 그룹홈) 예산이 얼마 전 동결된 것을 알고 난생처음 농성이란 걸 시작했다.
전국 그룹홈은 518개. 1300여 명의 사회복지사가 2700명의 아이를 24시간, 365일 살핀다. 고아·기아(棄兒)나 학대받은 아동이 대부분이다. 그룹홈은 7명 이하의 아이를 돌본다. 집단 양육 시설과 달리 가정집처럼 돼 있다. 종사자의 월 근로시간이 231시간으로 복지시설 중 가장 긴 편에 속한다.
30년 경력 안 원장의 월급은 155만원. 초과·야간·주말·휴일 등 수당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친다. 각종 규제는 별반 차이가 없는데 정작 필요한 ‘인건비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그래서 호봉제·직급제가 없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때 자립을 지원하는 전문인력이 한 명도 없다.
그룹홈은 새 정부의 ‘178조원의 포용적 복지’ 대상에서 빠졌다. 내년 최저임금 16.4% 인상도 남의 일이다. 안 회장은 “아이들을 한 번 더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종사자들이 더는 ‘노예 생활’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11일 ‘좋은 일자리 만들기 대토론회’를 열어 사회복지 종사자 근로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또 트레이드 마크인 ‘소득 주도 성장론’을 꺼냈다. 수십 년 누적돼 온 사회복지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게 이와 딱히 관련 없어 보이는데도 그렇게 포장했다. 소득 주도 성장을 포용 성장이라고도 한다. 아동청소년그룹홈·지역아동센터·장애인생활시설처럼 복지계의 가장 아픈 곳들을 포용하는 게 우선이다. 복지에 아무리 돈을 쏟아도 종사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서비스 받는 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178조 ‘복지예산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동그룹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