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늘어난 보육예산… 육아 책임의식 바꿔놓고 사회 균열은 더 깊어져
여성 경제활동 증진과 아동발달 지원에 초점 맞춰 보육 정책 전면 재편해야
윤희숙 KDI 연구위원·보건복지
지난 10여년간 복지 포퓰리즘의 폐해가 제일 컸던 부문을 꼽으라면, 의외로 별 고민이 필요없다. 쟁쟁한 후보들이 포진해 있긴 하지만 단연 독보적인 후보가 있기 때문이다. 보육정책이 그것이다. 보육예산이 가파르게 늘어 2000년 대비 21배에 이르렀지만 그게 선정 이유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내 아이와 가족에 대해 내가 져야 할 책임과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2세 이하 아이를 집에서 키울 때 지급되는 양육수당이 확대되어 온 데 이어, 내년에는 아예 전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대폭 증액이 검토되고 있다. 자녀 양육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늘리라는 젊은 엄마들과 여성단체의 요구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지원은 공돈이 아니라 정부가 세금으로 강제징수한 누군가의 주머닛돈이다.예를 들어 결혼해 가정을 이룰 엄두를 못 내고 독신으로 늙어가는 중년 남성은 우리나라 빈곤층의 한 축을 이루지만, 이들이 직·간접으로 낸 세금은 상류층과 중산층 주부들이 아이를 키우는 대가로 지급된다. 이를 당당히 요구하는 젊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더 난감한 것은 현재 상황만 뚝 잘라 본다면 이를 나무랄 수만도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면역력이 약해 집단적 환경을 권장할 수도 없거니와 일대일로 세심하게 정을 주며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알려져 있다. 보육시설이 일찍이 보편화된 서구에서도 어린 아기의 부모에 대해서는 육아 휴직 지원을 중시하고, 부모들도 여간해서 아기를 시설에 보내지 않는다. 0세 아기의 2008년 시설보육 이용률은 스웨덴 0%, 핀란드 1%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돌도 안 된 아기의 30%가 어린이집에 맡겨지는 데다, 그중 취업모는 20%도 안 된다. 돌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단시간 이용이 많은 서구와 달리, 취업하지 않은 엄마들도 대부분 전일제(全日制)로 아이를 맡긴다. 공짜이니 안 그러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사람은 너무 많고, 정작 저소득층의 일하는 엄마들은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반대로 어린이집 원장들은 배짱이다. 엄마들이 이런저런 항의라도 하면 "다른 데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무시하기 일쑤고, 어린이집은 억대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기도 한다. 정부가 서비스의 질 관리를 강화할라치면 군사조직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 저항으로 무산시키고, 급기야 지난 2월에는 보육교사 인건비를 세금으로 지원하라고 전국적인 파업까지 결행했다. 상황이 이러니, "내 아기는 내가 키울 테니 돈으로 보상하라"는 요구가 딱히 염치없는 것도 아니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표심(票心)을 의식한 포퓰리즘 때문만은 아니다. 포퓰리즘은 어디나 만연한다. 이것이 보육정책에서 유난히 견제되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방향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한마음 한뜻으로 갈지자 걸음을 계속한 결과로 사회가 무엇을 같이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납세자와 수혜자의 인식차가 벌어졌고, 예산은 급증했지만 사회의 균열은 더 깊어졌다.
재분배가 사회통합에 기여하려면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자신의 돈이 쓰일 만한 곳에 쓰인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목표가 분명하고 합리적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출산율 제고란 목표는 무차별적 보육지원의 한 원인이지만, 예산낭비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그간의 연구들은 출산율을 목표한 정책이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과를 갖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녀를 갖는다는 큰 결정에는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출산장려금 50만원은 별 영향이 없다. 사실 출산장려를 표방한 무수한 대책보다 치안을 강화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해 밤길 안전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높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은 출산율 대책이다.
보육지원의 정책목표는 여성의 경제활동 증진과 아동발달 지원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고령화 사회를 떠받칠 축이며, 아이들이 부모 경제력과 상관없이 정서적·지적 토양을 일찍 가꿔 미래의 사회적 계층 격차를 줄이는 것은 사회통합의 근본이다. 그러니 응당 이렇게 초점을 맞춰 보육정책을 전면 재편해야 하겠지만, 일부의 기득권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대선정국의 선심(善心) 열풍 속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제도는 사람을 만든다. 나를 위해 이웃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믿으며 국가의 지원을 쟁취하는 데 몰두하는 '수혜자형 인간'을 양산할지는 올해 쏟아질 약속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