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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복지사회의 선택
✍️ 선진사회복지연구회 📅 2012.05.28 00:00 👁 140

사회적 신뢰도 매우 낮지만 정치 참여는 활발한 나라, SNS도 싸움터로 변질
'情의 민족' 전통 살려서 공공성·투명성 강화해야 복지 비용 줄일 수 있어

후카가와 유키코 日와세다대 교수
금융의 폭주(暴走)와 파탄에 직면한 저(低)부담·저복지형 국가 미국, 재정 위기로 고(高)부담·고복지형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유럽…. 선진국의 경제 위기는 급속한 고령화로 본격적인 복지제도를 서둘러 확충하여야 하는 동(東)아시아 국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큰 정부' 노선을 유지하더라도 재정 규율이 지켜지는 나라가 있는 반면, '작은 정부'를 유지해도 위기에 빠지는 나라가 있다. 같은 고부담형인 유럽에서도 북유럽·네덜란드 그룹과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남유럽의 차이는 분명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피에르 카위 교수는 "그 차이는 국민의 공공심(公共心) 강도, 탈세·수뢰·복지의 부정수급(受給)·지하경제 존재 여부, 재분배에 대한 지지 정도에 좌우된다"고 했다. '세계 가치관 조사' 등 국제적인 조사·통계를 바탕으로 진행한 카위 교수의 연구를 보면,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은 재분배 측면에서 전체 유럽보다 지지도가 낮고 공공심(타인에 대한 신뢰도) 측면에선 북유럽과 남유럽의 중간 수준에 있다. 재분배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 미국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은 국민 심리와는 별개로, 실제 복지사회로의 이행이 선진국 가운데에서 늦은 편에 속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복지사회 설계는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에서도 커다란 이슈다. '예방적 복지' '고용을 통한 복지'를 주장하는 진영과 의료·교육에 대한 보조 확대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진영의 논점 차이는 비교적 선명해 보인다. 앞으로 5년 동안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기에 진입하는 한국은 선진국처럼 느긋하게 정치적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는 시간 여유도 없고, 양자택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양측의 노선을 조합시켜 가장 경비가 들지 않는 제도를 서둘러 구축하여야 한다.

한국은 시행착오를 연구한 선진국의 방대한 조사를 이용함으로써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후발(後發)주자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한국의 과제는 '사회관계 자본(Social Capital)의 확충'으로 요약될 것이다. '사회관계 자본'이란 신뢰·규범·네트워크 같은 사회구조를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복지·의료뿐 아니라 경제의 효율성조차 사회관계 자본과의 관련성을 따지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아직 이런 발상이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를 보면, 남을 돕거나 돕고 싶어하는 정도를 따지는 커뮤니티(community·공동체) 지표에서 한국은 터키와 비슷한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고 집단 간 관용성 등 신뢰 지표도 지극히 낮은 수준의 사회로 분류되고 있다. 일과 삶의 조화를 나타내는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측면에서도 한국은 최하위권이다. 통화위기 이후 효율 만능주의가 '사회관계 자본'에 대한 국민의 가치 인식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분단국가의 특수성도 작용하는 듯하다.

한국은 이처럼 사회적 신뢰도는 낮지만 정치 참여 수준은 상위에 속한다. 시민단체의 활발한 정치적 발언과 참여로 'NGO 대국(大國)'처럼 외부에 비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결국 정치로부터 독립해 지방이나 작은 활동 영역에서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NGO층(層)이 상대적으로 얇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큰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모금과 자원봉사가 대대적으로 전개되지만 '정말로 도움이 됐다'는 현장의 실감이 부족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IT 대국이라고 하지만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나 블로그가 커뮤니티 유지에 도움이 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런 영역이 싸움터가 된 것도 한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온라인 공간의 갈등 양상을 과도하게 보도하는 것도 한국적 특징이다.

한국은 '정(情)의 민족'이라고 한다. 이런 국민성에 우수한 IT 기반까지 갖추고도 '사회관계 자본'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정도를 넘어 복지 비용을 대폭 삭감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내다버리는 것이다. 학교는 경쟁만 아니라 공공성의 의미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고, 산업계는 경영의 투명성 향상과 사회적 책임을 위한 투자를 실천해야 한다. 행정은 민간과 협력해 지역 주민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 수준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한국에서도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시대는 끝나고 있다. 풍요롭고 강인한 사회를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좌우 대립을 넘어 같은 과제로 고민하는 신흥국들의 선두에 선 한국에 부과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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