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에 구세군의 가두모금 동참 소리와 종소리가 어느 해보다 힘차게 들린다. 가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몇 사람이 동참할까 궁금증이 발동해 지켜보았다. 5분, 10분. 겨우 한 사람… 저학년 초등학생인 듯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엄마에게 천원을 받아 빨간 모금함에 넣고 간다.
약간 수줍은 듯 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엄마랑 이야기하며 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무심코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과는 정녕 다르게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각 방송사에서 연말 이웃성금모금 ARS 자막이 보인다. 이름 없이 기꺼이 전화 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작은 계곡물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바다를 이루듯. 그렇게 천원, 천원이 모여 깜짝 놀랄 금액이 된다.
정말 보이지 않는 많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 사람들, 아름다운 손길. 그들은 분명 소시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도움을 받는 그들보다 조금 더, 형편이 어려울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누구를 돕는다는 것, 베푼다는 것은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려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IMF 때나 국가적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동안 충분히 보았다.
그런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올해는 얼마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의 비리·부정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온통 나라가 어수선해서인지, 예년과 같지 않다고 한다.
사회복지단체와 기관들은 연말 대목 한철 동안 모금된 후원금과 기부금으로 그 다음해 살림살이를 운영한다고 하니 걱정이 많을것이다. 지금의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는 내년 살림살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올 연말을 힘들고, 춥고, 배고프고 쓸쓸하게 보낼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우리 이웃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봉사나 기부금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말미암아 인·허가가 나지 않은 열악한 시설을 운영하거나 그곳에 머물고 있는 이웃들은 아마 올 겨울 내 혹독한 한파를 겪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신뢰를 쌓는 것은 오랜 시간 걸리지만 잃는 것은 한 순간임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비리, 부정 관련자를 즉각적으로 교체하고 환골탈퇴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투명성, 공정성, 윤리성, 사명감을 높이겠다고 국민들에게 반성의 글을 올리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9일 나눔의 행복온도는 2.3도로 올해 목표 금액의 1/5 수준이다. 신뢰를 쌓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신뢰를 잃는 것은 한 순간임을 절실히 알았을 것이다.
不信이란 단어가 터지면서 우리들의 그런 작지만 훈훈한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있거나 심지어 그들의 비도덕성에 분노와 배신감을 가지게 하고 있어 심히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이런 얼어붙고 냉랭한 사회적 분위기 때에 제 역할을 해야 할 사회계층이 고위층 및 지도층이라 생각한다.
조류독감 감염으로 닭, 오리 소비가 줄자 국회의원들이 삼계탕을 먹는 행사로 소비에 앞장서듯이, 또 얼마 전 중금속오염 낙지파동 때에는‘낙지데이’를 정해 서울시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음을 보여 소비에 앞장선 것처럼, 이번에도 사회각계지도층에서 이웃돕기 성금과 기부에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한다. 사실 지도층들의‘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몇 년 전부터 많이 거론되어 실천되고 있
지만 아직도 외국에 비해서 많이 미흡하다고 한다.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 의하면 상위계층의 도덕적 의무 실천(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서는 50.5%가‘거의 도덕적 의무 실천을 행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일부에서는 잘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편’이라는 응답이 47%였다. ‘도덕적 의무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의견은 1.3%에 불과하다고 나왔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아마도“우리들은 한다고 하는데 매번 그러냐”고 볼멘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사회 고위, 지도층의‘노블레스 오블리주’실천에 대한 체감 온도는 낮다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5월에 우리나라의 선진화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24위라고 밝혔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경제 정의 실천에 대한 기여를 평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항목은 OECD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고 글로벌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연간 1000만 원 이상의 고액 후원자 가운데 연예인, 기업인 등 사회 저명인사 비율은 9%인데 비해 일반인 비율은 91%라고 한다.
사회고위층 및 지도층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노래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이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힘들다고 했지만 기부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의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외국의 유명 인사들의 선행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부자도 천국에 가기가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며칠 뒤면 성탄절이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메시지가 정말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모아진다면 실현되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그들이 우리들의 작은 성의에 힘을 얻어 삶의 의지를 불태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동참해서 따뜻하고 훈훈한 연말, 연시가 되도록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 본다.
선진사회복지연구회 회장 이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