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아파트 한 채 있는 노부부의 고민
“주택연금에 가입할지 말지 결정하는 게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취재 중 만난 주부 임모(67)씨는 “당장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데, 자꾸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란 소식이 들려 주택연금 가입을 망설이게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임씨가 남편과 함께 받는 국민연금은 160만원 남짓. 서울 영등포구에 20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만 대출을 제외하면 생활비와 병원비에 쓰기도 빠듯하다. 여기에 “자식들 물려줄 집을 써버린다”는 생각이 더해지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고령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재산은 있는데 정작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부자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현금 빈곤층’이다. 자산의 3분의 2 이상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은 재산을 활용해 노후를 보내야 하지만, 이미 깔고 앉은 부동산을 활용할 길이 막막하다.
그렇다 보니 갈수록 증여는 늦어지고 있다. 2010년만 해도 증여하는 연령대는 50대가 가장 많았다. 70대는 10명 중 2명도 채 안 됐다. 하지만 갈수록 증여하는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증여하는 10명 중 4명이 70대로 가장 많다. 자연스럽게 부동산을 물려받는 자녀들의 연령대도 늙어가고 있다. 30, 40대가 증여받던 부동산을 이제는 50대부터 받는다.
1주택자가 은퇴 후 부동산을 활용해 돈을 융통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주택연금’이다. 집을 담보로 사망할 때까지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선뜻 주택연금에 가입하기는 망설여진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해도 연금액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강하다. 물가는 상승해도 연금액이 그대로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실질적인 연금액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뿌리 깊은 정서가 선택을 주저하게 한다.
주택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 등은 민간 금융기관이 상품을 만들고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 연금을 중도 상환할 수 있거나 필요할 때 수시로 인출할 수 있는 등 상품 종류가 다양하다. 호주는 주택연금 지급 한도가 물가나 평균 소득에 따라 자동 인상된다. 고령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식 물려주려고 팔지 못하는 집이 부모를 가난하게 만든다면, 이건 자식에게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이제 부동산은 단순한 재산이 아닌, 노후 생존을 위한 발판이다. 이를 위한 선택지를 마련해주는 금융 생태계가 필요하다. 복지는 삶의 막막함을 덜어주는 데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2025.6.10. 조선일보 황규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