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깜깜이 인사에 '승포녀' 눈물..육아휴직 다녀왔더니 고과 꼴찌
이용건 입력 2017.12.05. 17:30 수정 2017.12.05. 21:06
댓글 257
SNS 공유하기
음성으로 듣기
http://v.media.daum.net/v/20171205173003165?f=m&rcmd=rn
출산 후 한창 일할 30대 女, 경제활동 참가율 가장 낮아
승진 밀려 회사에 따지면 동료들 '이기적인 사람' 매도..일부 中企선 권고사직 종용
"회사 언제 그만둘지 몰라"..은행서도 대출한도 불이익
◆ 블라인드 대한민국 ② / 육아휴직 여성 4명중 1명은 1년내 결국 퇴사 ◆
이미지 크게 보기
국내 대형 금융회사에 다니던 김민경 씨(가명·34)는 육아휴직 복귀 한 달 전 회사 인사팀에서 전화를 받았다. "복귀 후 어디로 가고 싶냐"는 친절한 문의였다. 김씨는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렸다. 희망은 출산 전까지 근무하던 본사 부서였지만 해당 부서는 애당초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김씨는 알고 있었다.
차악으로 지점에 가도 좋겠다고 생각한 김씨는 지점을 희망했고 지점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입사 초기 수년간 지점 경력이 있었던 만큼 본사든 지점이든 열심히만 하면 큰 문제는 안 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지점 출근 첫날 김씨가 느낀 박탈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김씨에게 지점장이 상담차 건넨 말은 "휴직기간이 길었고 여기선 신입이니 당분간은 계속 일했던 동료들에게 고과를 양보하자"였다. 출산 전 6년의 직장생활 중 5년 남짓한 기간 다른 동료 승진을 위해 낮은 인사고과를 감수했던 김씨에겐 승진을 포기하란 말이나 다름없었다.
김씨는 "마지막 1년 반 동안 이를 악물어 좋은 고과를 받고 승진 대상이 됐지만 출산·육아 휴직에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배제됐다"며 "애를 낳고 돌봤다는 이유로 제때 승진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다시 밑바닥을 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을 꿈꾸다가 '승포녀(승진포기여성)'가 돼 회사를 잇따라 그만둔 탈(脫)워킹맘 선배들의 하소연을 마냥 남의 얘기로 치부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출산 육아기 여성이 가장 많은 30~39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1%로 20~29세(65.6%), 40~49세(67.4%)는 물론 50~59세 연령대(62%)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갖은 핍박과 불이익으로 인해 한창 일해야 할 30대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가장 위축돼 있는 셈이다.
커리어를 이어나가겠단 의지와 금전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직장맘의 길을 택하더라도 네 명 중 한 명은 채 1년을 버티지 못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육아휴직자의 1년 고용 유지율은 76.6%로 조사됐다.
육아 휴직자를 보호할 사회적 장치들이 보완되고 있지만 규정이 있어도 직원 간 수직관계를 이용해 묵살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큰마음 먹고 법적 싸움에 나섰다가는 거대한 조직과 상대하는 개인을 발견하게 된다. 육아휴직 복귀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는 송 모씨(38)는 "차장·부장도 아닌 대리 승진이 다른 동기들보다 2년 이상 밀린 게 억울해 근로기준법을 들이밀며 회사 측에 따진 게 가장 큰 실수였다"며 "소문이 금방 회사 내에 퍼지면서 그동안 호의적이었던 동료들마저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낙인찍고 냉대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부 중견·중소기업은 관리 사무직 여성을 육아휴직 후 생산직으로 발령내는가 하면 일부 중소기업은 직원이 출산휴가·육아휴직에 들어갈 경우 대체 인력을 구한 후 비용 부족을 호소하며 기존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종용한다.
육아수당 지급 시기 직전에 퇴사를 유도하고 육아휴직자는 버젓이 승진 대상에서 배제하기도 한다.
불이익과 핍박은 회사 밖에서도 자행된다. 대출을 위해 최근 시중은행을 찾은 박씨는 터무니없이 낮은 대출한도에 충격받았다. 은행 측이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올해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한도를 정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동안 벌어온 연소득 흐름이 있는데 왜 유독 육아휴직 연도를 기준으로 하는지 따졌더니 '육아휴직자들은 복직을 안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수면 위에 있던 육아에 대한 '눈 먼' 인식이 수면 아래로 이동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고생 많았다"는 인사보다 "잘 쉬다 왔냐"는 비아냥이 자연스러운 후진적 기업 문화 속에서 육아휴직 기간 확대 같은 정부 시책은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육아 휴직을 쓰고 복직한 여성에 대해 육아를 1차, 회사 일을 2차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높아질수록 육아를 여성의 일로만 국한하는 관행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3421명이던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이듬해 4872명에서 지난해 7616명까지 늘어났다. 2010년 2.0%에 불과했던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올해 6%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용건 기자 / 윤지원 수습기자]